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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서재 시리즈/트럭 모는 CEO

#5. 24시간 시동이 꺼지지 않는 트럭?

by 센시오 2020. 9. 8.

트럭장사꾼의 24시간 '하루' 활용법

트럭 장사를 할 때는 시간 단위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게 된다. 아침 시간에 장사하는 곳과 밤에 장사하는 곳, 그리고 새벽 장사를 하는 곳이 수시로 바뀐다. 이동이 쉬운 트럭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장사 전략이다. ‘안 되는 시간’이란 없다. 내 입장에서 팔릴 만한 곳이 아닌 고객 입장에서 살 이유가 있는 곳을 찾아가면 시간의 제약에 얽매일 이유가 없어진다.

AM 09:00. 재래시장 주부들 공략하기

아침 시간대에는 시장 주변에 트럭을 댄다. 갓 입고된 신선한 물건을 사고 싶어 하는 어머니들을 아침 시장에서 많이 만날 수 있다. 오전에 미리 장을 봐두고 오후 시간을 여유 있게 보내려는 주부들도 시장 주변으로 모여든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재래시장이라 이름 붙은 곳이라 해도 상권이 죽은 곳이 꽤 많다는 점이다. 나 역시 내비게이션 검색만으로 시장을 찾아갔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방법은 단 하나, 직접 부딪쳐보면서 내가 장사할 곳을 하나하나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PM 08:30. 밤 장사의 메카, 지하철역 주변

밤 장사하기 가장 좋은 트럭 상권은 바로 지하철역 주변이다. 그렇다고 모든 지하철역에서 장사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환승역 라인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기에 무거운 과일을 사 들고 가는 건 부담이라 과일 트럭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반대로 인근에 주거단지가 밀집된 비교적 새로 들어선 노선의 지하철역들은 장사가 훨씬 잘 된다.

AM 12:00. 쇼핑몰에 잠입하기

지하철역 주변의 밤 장사의 한계는 11시 30분. 다음으로 찾아가는 곳은 동대문 같은 새벽 옷 시장이다. 쇼핑몰 안의 상인들을 타깃으로 장사를 하기 위해 나는 안으로 들어가기로 전략을 세웠다. 큼직한 여행용 가방 안에 참외를 가득 담아 옷을 납품하는 업자인 척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층마다 돌아다니며 상인들에게 참외 맛을 보여주면서 '방문 판매'를 했다.

AM 03:00. 버스에 칼을 들고 오르다

새벽 3시가 되면 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터미널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대절 버스들이 승객들을 태운 채로 정차해 있는데, 그런 버스가 나의 목표다. 먼저 버스 기사에게 참외를 건네면서 양해를 구했다. 매몰차게 거절하는 기사분은 거의 없었다. 그다음부터 잠깐은 나의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성주에서 올라온 싱싱한 성주 꿀참외 홍보차 나왔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맛만 한번 보세요.” 손님들은 대부분 맛있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참외를 사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관찰해봤더니 문제는 깎아 먹을 칼이 없었다. 손님들의 불편함을 알고난 후 나는 천 원 짜리 접이식 칼을 잔뜩 사서 버스마다 나눠주는 방법을 썼다.

AM 05:00. 해장국집 이모의 피부 관리에 나서다

버스 순회를 한 바퀴 하고 나면 새벽 5시가 된다. 이번에는 해장국집 거리로 향한다. 이때는 해장국집에서 일하는 이모들이 퇴근을 준비할 시간이다. 오전 타임 분들과 교대하기 전까지 잠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분들은 생활 패턴 때문에 장을 보기가 여의치 않다는 점을 공략해 식당을 돌며 또 한 번 방문 판매를 했다. 과일을 깎아서 맛을 보라고 건네고는, 그동안 컵이라도 치우며 일손을 거든다. “피로 회복에는 새콤달콤 자두죠. 비타민 덩어리라 피부에 얼마나 좋다고요.”

AM 07:00. 두 시간의 에너지 충전

이렇게 새벽 장사를 모두 마치고 나면 오전 7시쯤이 된다. 출근 시간에는 장사도 힘들고 제지도 많이 당하기 때문에, 이때는 쪽잠을 자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그래 봐야 두어 시간이지만, 꿀 같은 잠을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면 몸이 제법 개운하다.

하루 중 버리는 시간, 버리는 에너지가 한 톨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가까운 신념이 나를 움직였다. 그렇게 봄여름가을겨울을 길거리 트럭에서 보냈을 때 까마득하기만 하던 빚이 어느 새 사라졌다. 통장에 있던 숫자 0이 사라지던 날 아내와 나는 서로를 껴안고 한참이나 눈물바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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