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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선장수가 꿈인 도곡동 아이?

by 센시오 2020. 9. 8.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생선가게

가장 고민이 되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생선 코너에 들른 아이들은 대부분 인상을 찌푸렸다.

“준서야, 오늘 저녁에 고등어구이 어때?”

“나 고등어 싫은데. 햄이 좋아.”

“서우야, 생선찌개 해 먹을까?”

“엄마, 징그럽게 생겼어. 그리고 생선은 냄새 나.”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생선을 좋아하고 쉽게 다가올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수족관을 놓기로 했다. 아이들 키에 맞는 높이를 고려한, 작은 수족관을 특별 맞춤 제작해서 매장에 가져다놓았다. 산낙지, 문어, 소라, 때로는 광어처럼 팔지도 않을 물고기까지 집어 넣었다.

내가 만든 수족관 인기는 대단했다. 생선은 냄새 나서 싫다던 아이들도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를 보고는 “우와~ 엄마 이거 봐!” 하면서 달려왔다. 점점 우리 가게는 동네 아이들의 작은 아쿠아리움이 되어갔다. 엄마 손을 잡고 오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 친구들에게 나는 큰 소리로 얘기했다.

얘들아 파는 거 아니니까

마음껏 만지고 갖고 놀아도 된단다.

물고기 아저씨 같은 생선 장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아직도 보고싶은 꼬마 친구가 한 명 있다. 귀여운 남자아이였는데, 우리 가게에 처음 왔던 일곱 살 무렵까지 생선을 입에 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 나와 친해진 다음부터는 생선의 맛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매일 생선이 없으면 밥을 안 먹는다’며 엄마는 뿌듯해서 아이 손을 잡고 고등어, 삼치, 갈치를 번갈아가며 사갔다.

어느 날, 아이 엄마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죄송한데요, 여기 옆에서 아이가 숙제 좀 해도 될까요? 아니, 유치원 숙제를 꼭 물고기 아저씨랑 하고 싶다고 그러네요.......”

나는 귀찮기는 커녕 아이의 마음이 너무 고맙고, 또 기뻤다. 축축하고 비린내 나는 가게 바닥에 아이는 정말로 상자를 하나 가져와 앉아서 숙제를 했다. 이후 아이는 종종 가게에서 숙제를 하며 나와 시간을 보냈다.

또 어느 날,

아이 엄마가 더욱 조심스레 부탁을 해왔다.

유치원 숙제가 있는데요. 자기 꿈을 생각해보고 그 업종에 종사하는 분을 인터뷰해 오라네요.

얘가 물고기 아저씨 같은 생선 장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해서요.

아이와 잠깐 인터뷰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영어유치원이라 아이가 영어로 질문할 텐데, 제가 해석을 할게요. 바쁘신데 죄송해요.”

나는 당연히 승낙했다. 무엇보다 엄마가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큰 대학병원의 의사이고 엄마도 유명한 변호사인데, 생선장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의 꿈을 존중해준다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닐테니까.

그렇게 꼬마 친구와 함께 추억을 만들며 어느덧 시간이 흘렀고, 내가 가게를 떠날 때가 찾아왔다.

가게를 떠나게 되던 그날, 나는 아이 엄마에게 대신 작별 인사를 전했다.

“제가 내일부터는 가게에 없을 거예요. 주원이한테 인사도 못하고 가서 어쩌죠.

미안하다고 꼭 좀 전해주세요. 그동안 너무 감사 했고 주원이 덕분에 참 즐거웠습니다.”

며칠 뒤,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물고기 아저씨가 간 뒤로 얘가 울기만 하고 밥도 안 먹어요. 통화 한번 부탁드려요.”

“그래요?

제가 내일 가겠습니다. 전해줄 것도 있고요.”

다음날 나는 입학을 앞둔 아이를 위해 문구세트를 선물로 준비하고는 도곡동을 찾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를 꼭 껴안아주고

이렇게 말했다.

“주원아. 물고기 아저씨가 다음에 꼭 여기서 생선가게 다시 할게. 그때까지 밥도 잘 먹고, 운동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돼. 더 멋지고 건강해져서 또 만나야지. 약속하는 거다?”

아이와 손가락을 걸고서 돌아서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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