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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서재 시리즈/이타경영

# 세계최초 100년 카르텔 깬, 작은 회사의 전략!

by 센시오 2020. 8. 26.

"Diamond is forever"

이 유명한 광고문구는
1947년부터 지금까지 사용되고있다.
그 이후 사람들에게 다이아몬드는
영원한 아름다움,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보석 이상의 것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뒤에 ‘카르텔’이란 단어가
붙게된 역사를 살펴본다면,
반짝임 뒤에는 무서운 이기적임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드비어스 사는 지구상 생산되는
거의 모든 다이아몬드를 사들이기 위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했다.

다른 군소 생산업체들과 함께 시장 공급 물량조정,
가격조정을 통해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독점적 다이아몬드 카르텔을 만들기 위해 실제로
수많은 관련인들은 죽음과 희생을 치뤄야만 했다.
'카르텔에 반기를 든 누군가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게 된다.


유럽 해운업계에도 ‘카르텔이여 영원하라’는
말을 사용해도 될 정도의
100년을 독식한 카르텔이 있었다.
그런 카르텔에 반기를 든 한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카르텔을 깼고
바다 위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공할 길을 만들었다.
바로, 이타(利他)경영 철학으로
아주 작은 회사 에버그린을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CEO 창융파'이다.
과연 그는 어떻게 카르텔에 맞섰을까?

 

100년 카르텔에
도전하다

어느새 에버그린의 배는
미국, 지중해 등 세계 곳곳을 누비게 되었다.
이제 세 번째 돌파구를 찾을 때였다.
바로 극동-유럽 노선이었다.
다만 큰 문제라면
100년 동안 아무도 뚫지 못한
카르텔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선을 장악한 해운동맹은 FEFC였다.
운임이 비싼 데다가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여
화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에버그린의 기회를 엿보았다. 

이 빈틈없는 해운동맹을 뚫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FEFC에 속하지 않은 업체가 노선을 비집고
들어가려면 온갖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우리가 땅바닥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빌 때까지
몰아붙이겠다고 그들은 으름장을 놓았다.
과거에도 우리 같은 회사가 있었지만
결국 두 손을 들고 물러났으며, 앞으로도
이변은 없을 거라고 위협적으로 호언했다.

사업을 하는 다른 동료들은
소식을 듣고서 진지하게 조언했다.
나를 비웃는 사람도 많았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막무가내로 덤비는
동양인 같으니라고!”

나는 물러서지 않았고 화주들에게 약속했다.

제 인격과 에버그린의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절대 물러서지 않습니다.

 

카르텔을 깬
세계 최초의 기업!

나는 적이 강하게 나올수록
더 힘껏 일어서는 기질이었다.
피하려고만 해서는 사업을 할 수 없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치밀하게 작전을
짜고 효과적으로 공격하자.’

유럽 노선을 두고 벌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1,200TEU급 V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한 것이다. 

비웃음과 함께 쏟아지는 비난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나는 직원들을 이끌고 유럽으로 날아갔다.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 각 항구를 돌며
현지 상황을 살피며 각지의 화주들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버그린과 화주들 모두 함께 살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에버 그린의 도전을 반기면서도
우려하는 기색이었다.

화주들의 지지를 얻은 후부터는
FEFC의 경고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계획대로 차근차근 일을 추진했다.
아니나 다를까, FEFC는 우리를 압박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하지만, 그동안 FEFC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온 화주들은
에버그린의 등장을 크게 반기며
마음 편히 운송을 맡겼다. 덕분에 우리는
1,200TEU급 컨테이너선을 가뿐히 채울 수 있었다.

1979년 마침내
극동-유럽 정기 노선을 개설하면서

에버그린은 100여 년간 이어온
FEFC의 카르텔을
깨뜨린 최초의 기업이 되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은
내가 해야만 하는 일!

에버그린이 하루하루
힘과 몸집을 키워나가자
FEFC도 더는 어쩌지 못했다.
그들은 세 달 안에 에버그린을
박살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에버그린이 100년 카르텔을 깬 이 사건은
우리의 성장에 결정적인 기점으로 작용했다.
에버그린은 기세를 몰아 일본 해운 시장까지
점령했고 대서양 노선을 여는 데 성공했다.
일본 3대 해운업체 중 하나인 NYK라인
(NYK Line)도 이루지 못한 과업이었다.

해운량도 2,900TEU에 서 3,500TEU로,
다시 6,300TEU로 나날이 늘어났고 나중에는
쏟아져 들어오는 화물을
다 싣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FEFC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수준까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아무도 깨려고 하지 않았던 카르텔,
난 그것을 깨고 싶었고
그 결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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