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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서재 시리즈/이타경영

#10.100년 카르텔을 깬 세계최초기업?

by 센시오 2020. 8. 26.

100년 카르텔을 깨다

어느새 에버그린의 배는 미국, 중남미, 지중해 등 세계 곳곳을 누비게 되었다. 이제 세 번째 돌파구를 찾을 때였다. 바로 극동-유럽 노선이었다. 다만 큰 문제라면 100년 동안 아무도 뚫지 못한 카르텔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선을 장악한 해운동맹은 FEFC였다. FEFC는 운임이 비싼 데다가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여 화주들의 원성을 샀고 일본에 특히 호의적이어서 대만 화주는 일본 화주가 먼저 선택하고 남은 공간을 어떻게든 ‘주워서’ 써야 했다. 대만 화주들로서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나는 여기에서 에버그린의 기회를 엿보았다.

우리가 이 빈틈없는 해운동맹을 뚫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FEFC에 속하지 않은 업체가 노선을 비집고 들어가려면 온갖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우리가 땅바닥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빌 때까지 몰아붙이겠다고 그들은 으름장을 놓았다. 과거에도 우리 같은 회사가 있었지만 결국 두 손을 들고 물러났으며, 앞으로도 이변은 없을 거라고 위협적으로 호언했다.

하지만 나는 적이 강하게 나올수록 더 힘껏 일어서는 기질이었다. 피하려고만 해서는 사업을 할 수 없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치밀하게 작전을 짜고 효과적으로 공격하자.’ 유럽 노선을 두고 벌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1,200TEU급 V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한 것이다.

비웃음과 함께 쏟아지는 비난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나는 직원들을 이끌고 유럽으로 날아갔다.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 각 항구를 돌며 2개월 동안 현지 상황을 살피며 각지의 화주들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에버 그린의 도전을 반기면서도 우려하는 기색이었다.
“버틸 수 있겠습니까? 이전에도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갔죠.”
화주들의 걱정에 나는 내 의지를 말했다.

“제 인격과 에버그린의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절대 물러서지 않습니다.

화주들의 지지를 얻은 후부터는 FEFC의 경고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계획대로 차근차근 일을 추진했다. 아니나 다를까, FEFC는 우리를 압박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하지만, 그동안 FEFC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온 대만 화주들은 에버그린의 등장을 크게 반기며 마음 편히 운송을 맡겼다. 덕분에 우리는 1,200TEU급 V형 컨테이너선을 가뿐히 채울 수 있었다.

1979년 마침내 극동-유럽 정기 노선을 개설하면서 에버그린은 100여 년간 이어온 FEFC의 카르텔을 깨뜨린 최초의 기업이 되었다. 에버그린은 기세를 몰아 일본 해운 시장까지 점령했고 대서양 노선을 여는데 성공했다. 일본 3대 해운업체 중 하나인 NYK 라인도 성공하지 못한 과업이었다. 해운량은 나날이 늘어났고 나중에는 쏟아져 들어오는 화물을 다 싣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FEFC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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