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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서재 시리즈/이타경영

#9.불황에도 7천억 흑자 낸 비결?

by 센시오 2020. 8. 26.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다

나는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가고자 하는 길을 걷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 당시 컨테이너화 업체들의 ‘표준’은 800TEU급 컨테이너선이었다. 그러나 오일쇼크 탓에 경기가 둔화되어 화물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고민 끝에 업계의 표준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융통성을 발휘해, 646TEU로 건조하되 나중에 필요하면 더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600TEU급이면 만약 원양 해운 진출에 실패하더라도 역시 컨테이너화 중인 근해 해운에 즉각 투입이 가능했다.

이 방식은 화주들의 신뢰를 얻었다. 이후 믿을 만한 해운업체로 입소문이 나서 반년 만에 고객이 크게 늘어났다. 이에 우리는 원래 적재 용량이 646TEU였던 S형 선박을 즉각 866TEU까지 확장했다.

2년 후, 업계가 여전히 800TEU급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거꾸로 가장 먼저 치고 나가는 전략을 세웠다. 우리의 조치를 보고 업계 사람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주변의 소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1,200TEU급 컨테이너선으로 FEFC의 카르텔을 깨뜨리고 업계 최강자로 올라섰다. 이후 기술이 발전하고 화물량이 증가하면서 에버그린은 1,800TEU급을 거쳐 3,500TEU급 G형까지 적재 용량을 서서히, 안정적으로 늘렸다. 어떤 순간에도

나는 늘 나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발걸음을 옮겼다.

 

불황에도 살아남는 법

몇 년이 흐른 후, 세계 경제가 호전되었을 때 전 세계 해운업체들은 경기가 활황일 것이라는 핑크빛 전망에 사로잡혀 너도나도 슈퍼 컨테이너선을 주문했다. 때문에 조선 비용이 터무니없이 상승했다. 그러나 나는 실속 없는 명성을 욕심내거나 성취감에 마냥 젖어 있지 않았다.

당시 불경기를 예감한 사람은 업계에서 오직 나 혼자였다. 나는 경기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일이 있다. 영국의 해운 전문지 〈로이드 리스트〉와 인터뷰를 할 때였다. 기자는 나를 일부러 자극하려는 듯이 에버그린만 슈퍼 컨테이너선 추세에 뒤떨어져있다며 특별한 이유가 있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지금이야 경기가 좋고 경제 환경이 양호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배를 건조하느라 많은 돈을 끌어다 쓴 해운업체들은 한꺼번에 무너질 겁니다. 자금을 대출해준 은행까지 파산할 수 있어요. 나는 적재 용량이 1만 TEU를 넘으면 위험하다고 봅니다. 에버그린은 그렇게 큰 배를 보유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그게 ‘추세’라고 해도요.”

그로부터 3년 후, 글로벌 금융 위기로 해운 경기가 크게 침체되었다. 많은 업체들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불경기를 맞이하여 배 값이 많이 떨어졌을 때, 나는 드디어 때가 왔다 생각하고 컨테이너선 30척을 새로 주문했다. 계산해보니 약 7,121억 4,000만 원을 아낀 셈이었다. 보통 해운회사가 호황일 때도 올리기 어려운 수익을 낸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업계의 규칙을 언제든 과감하게 깨고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며 세계 컨테이너 해운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나갔다. 나는 남들의 걷는 속도나, 사람들의 판단 기준에 흔들리지 않았다.

 

거래처가
부자가 되는 방법만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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