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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서재 시리즈/이타경영

#3.“당신이 그걸 해낼 수 있겠어?”

by 센시오 2020. 8. 25.

세계를 향한 도전을 시작하다

열여덟 살에 처음 배에 올라 선장이 되었고, 혼자 힘으로 에버그린 해운을 세웠다. 나는 에버그린의 새 노선을 개척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험지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사업은 언제나 의심과 굴욕, 조롱 속에서 성장했다.

1970년대 초반으로 접어들 무렵 ‘컨테이너화’라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을 직감했다. 세계적인 대형 해운업체들은 이미 5년 전부터 컨테이너선을 슬슬 도입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선박만을 고수한다면 시대에 뒤처져 한발 더 나아갈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즉각 컨테이너화에 착수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돈이었다. 보유한 선박을 전부 컨테이너화하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했기에 하는 수 없이 일본 종합상사 마루베니에 투자를 부탁했지만 작은 회사에 불과했던 에버그린이 큰 자금의 투자를 받기란 쉽지 않았다.

“에버그린이 무슨 회사랍니까?

듣도 보도 못한 회사가 컨테이너 선을 건조하겠다니 놀랍군요.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믿습니까? 당신이 이런 걸 해낼 능력이 있어요?” 같은 치욕적인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다행히 선박부 호사카 부장의 도움으로 임원들을 설득했고, 결국 마루베니 상사는 에버그린에 투자를 결정했다.

나는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실패해서는 안 돼. 반드시 성공해야 돼!’
에버그린은 다른 이들보다 늘 앞섰기에 거울로 삼을 만한 대상이 없었다. 오로지 우리 힘으로 ‘전면 컨테이너화’라는 대대적인 전환을 이뤄내야 했다. 우리는 2년의 시간과 10억의 비용, 많은 인력을 투입해 전 세계 주요 항구의 여객 및 화물 운송 현황을 조사했다. 이제 갓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은 규모의 에버그린에게 컨테이너화는 사활을 건 투자였다.

에버그린은 우선 600TEU급 S형 풀 컨테이너선 네 척을 건조해 극동-미 동안 정기 컨테이너 노선을 개설했다. 1975년 7월 17일, 드디어 에버그린의 풀컨테이너선 에버 스프링 호가 첫 출항하면서 대만 해운 역사상 최초로 컨테이너 해운이 시작되었다.

우리 직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고객을 유치하고 회사를 알리기 위해 애썼다. 다행히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점점 좋아졌고 화주의 신뢰를 얻으면서 고객도 늘어났다. 1년 후, 극동-미 서안 정기 노선 운행을 시작할 무렵이 되자 회사는 비로소 안정기에 들어섰다.

에버그린이 풀컨테이너선 해운업체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될 무렵, 마루베니 상사의 사토 부장을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났다.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에버그린이 이렇게 성장하리라고는 정말 예상 못했어요.”

우리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서 어느새 일본 해운업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컨테이너화라는 야심찬 행보를 굳건히 이어가기 시작했다.

 

거래처가
부자가 되는 방법만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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