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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서재 시리즈/철학이 있는 기업

#8. 할인 안 하는 할인판매점

by 센시오 2020. 8. 24.

버스에서 얻은 혁명의 아이디어

어느 가을, 나는 버스를 타고 한 세미나의 일정에 참석하러 가던 중이었다. 내 뒤에는 나와 같은 세미나에 가는 업계 사람들로 보이는 남자 둘이 시장 조사 결과를 이야기하며 특가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한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

“난 특가 제품이 싫어. 내가 어떤 물건이 필요할 때 그 제품은 절대 특가로 나오지 않거든. 그래서 똑같은 물건을 괜히 더 비싸게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니까. 특가로 나온 제품은 주로 나한테 필요 없는 것들이고. 그래도 가격이 아주 싸니까 괜히 사게 된단 말이야. 그리고 나중에 또 후회하지.”

내가 겪었던 이 작은 경험은 데엠의 다음 혁명으로 이어졌다. 나는 경영진들 앞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냈다.

“더 이상 특가 제품을 내놓지 말아야겠어요. 이제 항시할인 가격제를 도입합시다.”

소매상에게는 비장의 기술인 할인 행사를 철폐한다니, 경영진은 경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을 정도로 확신에 차 있었다. 할인 정책이 완전히 잘못된 방법이라는 사실은 명확했기에 지금까지처럼 계속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할인 행사는 고객의 입장이 아닌, 상점의 입장에서 고안된 것이었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할인행사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집에 빨래 세제가 떨어져 세제를 사러 갔는데 그때는 세제 행사를 하고 있지 않아서 정가를 주고 살 수밖에 없다. 며칠 후 가게에 가보면 하필 세제 할인 행사를 하고 있다. 이렇게 상점 입장에서만 고안된 할인 행사에 고객들은 휘둘리고 있었다.

나는 동료들을 설득하기 위해 시장 조사를 했다. 그 결과 할인 행사를 대체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동료들은 끝까지 이 결과를 믿지 못했다. 나는 ‘항시할인 가격제 도입’ 여부를 더 이상 논쟁의 주제로 삼지 않았다. 언제, 어떤 식으로 도입할지를 논의에 부쳤다. 경영진은 미래에 벌어질 문제들을 걱정하며 나를 향해 격분을 쏟아냈다.

하지만 내게 문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전만이 있을 뿐이었다.

 

눈앞에 놓인 1만 2,500가지의 숫자들

데엠이 항시할인 가격제 도입 여부를 논할 때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한 제도가 하나 더 있었다. 그 무렵 은행들은 센트 동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당시 데엠에서는 제품의 가격이 보통 99센트로 끝나기 때문에 유로 보다는 센트 동전이 많이 사용 되고 있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가격을 타사에 맞춰서 할인을 적용하는 것이 아닌, 5센트로 끝내는 발상과 함께 항시할인 가격제를 도입할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논의했다. 5센트로 끝난다면 센트 동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가격의 끝자리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고민한 적이 없었다. 경영진의 관점에서 ‘항시 할인 가격’은 위협적인 요소였다. 할인 행사를 하면 매출이 오르고, 하지 않으면 매출이 감소한다는 것을 그들은 실제로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5센트로 끝나는 가격이 새로운 선택의 여지를 열어주었다. 지금까지는 타사보다 할인폭을 10%나 낮췄지만, 가격을 5센트로 끝내어 95센트로 맞춘다면, 4센트 할인만으로 충분했다. 그 다음부터 벌어진 일은 다음의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의지가 있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의지가 없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내놓던 할인 가격을 모든 제품에 적용시켜서 항상 저렴한 가격을 유지한다면, 경쟁업체에 비해 늘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다면 어떨까’에 대해 다함께 계산 작업에 들어갔고 결과는 데엠이 위태로워지는 일은 없었다.

1만 2,500가지의 다양한 제품에 대해 일일이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최신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복잡한 계산 과정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지가 있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의지가 없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는 신조에 발맞추어 우리는 다시 힘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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